마음에 심은 집 1                                                  

 

  빅토리아에 도착한 첫날의 밤하늘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보름달이 떠있었다.  은빛 바다와 협주하는 월광곡은 고즈늑한 마을에 입성한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선율이었다.

 

 

길고 고운 달빛망에 낚이듯 바다한가운데로 모여든 유람선과 화물선은 금황색 달빛으로 옷을 갈아입고서 저마다 비밀이 생긴 듯이 흩어졌다

 

  특별한 파장이 흐르는 밤이라 달빛에 기도하듯 간신히 잠을 청했는데 어느새 아침햇살이 창문을 달구고 내 콧잔등까지 올라와서 앉아 있었다

  잔상이 강하여 다음날은 해와 달의 교대식을 지켜 보리라 마음먹고 밤을 꼬박 세우다시피 바다 앞에 섰다. 정지한 채 지나가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천혜의 자연이 영원불변할 것처럼 어제와 오늘이 교차되어 흐른다.

 

 

  햇살바람이라는 천상부대가 만든 해변을 향해 선물상자처럼 오밀조밀 줄 서 있는 사람의 집들은 외등을 들고 꿈벅꿈벅 졸고있다. 곧 현관문이 열리고 이방인으로 서있는 내게 환영의 손을 내밀 것만 같으다. 어찌됐거나 느낌만 그렇다는 것이지 세상은 현존하는 그들이 받은 선물이고 감히 나눠줄 수 없는 보금자리일 뿐. 

  부러움이 나의 감동을 초라하게 하는 듯 했다.

 

 

 

 

 

  깊은 밤을 통과하고 새벽과 조우하고서야 그리움이 몰려왔다.

 

 

멀리 고향집은 무엇이 그리도 불편했던가.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위해 서너번의 이사를 하느라 몇 해를 써버리고 나니 나는 기진맥진되었다.

 

 

  어린아이들을 위해 아파트1층으로 이사했던 첫 번째 우리의 보금자리는, 하루햇살을 온종일 받아봐야 겨우3시간 정도였다. 게다가 앞 테라스에는 바람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반대쪽 아이들 잠자는 방에는 조금만 창문을 열어놔도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바꾸고 싶은 데를 찾아 고칠 궁리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짧은 해걸이는 어쩔 수 없어서 거실 천정에 조명박스를 만들어 넣었고, 부족한 바람을 부풀리기 위해 발코니창문을 개조했다. 아이들 방은 작은 발코니문을 덧대어 바람양을 조절하고 입구소음을 막을 수 있도록 현관문을 이중으로 덧대었다. 이렇게 단점을 모두 보완해서 고쳐놓고도 마음에 안차서 한숨을 내쉬곤 했다.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해와 바람이었다

  햇살이 내리 꽂힌 주택가를 지나면 그곳에 터잡고 사는 사람들이 마냥 부러웠다

  빨래가 맘껏 펄럭이는 그 집이 내 집이길 갈망했다

  맞일하는 우리부부에게는 관리가 안된다고 주택을 말리시는 시어른의 말을 들으니 물가에 가서도 맘껏 수영하지 못하는 기분처럼 늘 답답했다.

 

 

 

  어느날에는 편백나무숲으로 유명한 동네에 아파트단지가 생겼다고 광고해서 구경갔다가 남편의 동의를 얻어 큰맘먹고 3층 한 채를 계약했다. 운이 따랐는지 살던 집도 내놓기 무섭게 금방 팔렸다. 바로 이사 들어간 새집은 태양과 바람이 제집 드나들 듯 하루종일 넘쳐났다. 거실에 텃밭을 두어도 좋을 만큼 화려한 햇살과 편백나무향이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가 너무 좋았다내가 살고 싶었던 집이라고 좋아라 했다. 출퇴근 시간이 좀더 걸리더라도 감수하고 아이들 학교도 옮기기로 하고 간 곳이었다.. 자고로 보금자리는 이래야 한다고 만족했다

  가소롭게도 얼마 안 가서 만족은 숙명처럼 투정하기 시작했다. 익숙했던 생활터전의 희생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겼던 광풍이, 겨울이 다가오자 치명적인 단점으로 돌변했다. 태양길인 황도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고도도 낮아지는 탓에 햇빛은 완전히 앞건물에 가려졌고 선풍기도 필요없이 시원하게 불어오던 바람은 쌍칼냉기로 무장하여 창문을 열어두기 무서웠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처럼 불만이 잠자지 않았다.

 

 

  겨울나기가 영 서글펐던 마음이라 이사간지 세달만에 집을 비워두고는 쫒겨가듯 전에 살던 동네로 세를 들어 다시 이사를 하고 말았다.

 

 

  

  내가 햇살과 바람에 유독 애착을 보이는 까닭은, 건강하지 못했던 친정엄마가 어두운 집 때문이라고 늘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컸기 때문이다. 양쪽 집에 막혀 빛도 바람도 안들어 와서 낮에도 전기불을 켜고 살아야한다는 말은 몇시간이나 계속되는 신세한탄으로 이어지곤 했다. 반듯한 집에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세뇌가 되어 어른이 된 등마디에 깊이 박혔나보다.어디가 아플때면  더욱 민감해지곤 했다. 

 

 

  다시 이사올 때는 참말로 많은 것을 살피고 확인하였다. 무슨 삼신이 곡예를 하는지 고르고 고른 아파트 우리 동 바로 앞 길이 회사와 학원가 버스 승하차 통합정류소로 허가가 났다.  작은 승용차에서부터 대형 셔틀버스까지 끊임없이 요란한 소리와 매연을 뿜어댔다. 좋은 시간이 모두 저당 잡히고 나자 완전 딴판이 되었다. 창문은 맘껏 열수가 없어 속은 상할 대로 상하였다.

 

 

  

  그러던 차에 시댁식구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방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또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학군도 아니고 직장도 아니고 오로지 하늘을 품어볼 욕심이었다. 반 년만에 세번의 이사를 하는 유별스런 아줌마가 나였다

이쯤되니 이사의 고수가 되었는지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몰라도 이번에는 일단 방이 많고 살기에 편리한 몇가지 중요한 것만 따졌다. 만족은 없다고 위로하면서 정신적 건강을 위해 득도하리라 생각했다

  운동이 필요하신 어머니와 함께 햇살과 바람을 맞으러 공원산책을 자주 다녔다

  밖으로 나가니 들도 산도 좋았고 보금자리에 대한 집착도 사그라지는 듯 했다

  그러다가 아예 산책을 멀리까지 온 것이 빅토리아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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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도 도착이 되지 않는 곳이 있단말인가.

  새벽 햇살과 바닷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흔들고 마음을 뭉개었다

  울렁거렸다

  휴우. 이사의 히스토리만 남긴 채 상처는 아물지 않았나 보다

  광풍의 호사로 사유욕이 차 오른다

  한달 후면 돌아갈 처지에 이삿병이 새로 도질 지경이었다

  빅토리아에는 마음에 드는 거처지가 있을 것만 같아 참지못하고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빅토리아에는・・・・・.